행복한 화학반응을 위한 행복한 상상

관리자
2023-07-22

첫 번째 향수를 출시했다. 

쉽지 않았다. 조향의 지식을 쌓고 역량을 키우는 것도 그랬지만, 법적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브랜드를 만들고 포장과 판매를 포함한 온갖 시스템을 갖추는 모든 일이 실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여건상 하던 일을 병행하면서 그 모든 일을 직접 다 해내야 하는 것이 회한을 불러오기도 했다. 너무 대책 없이 나이브하게 살았어. 꼭 이렇게 살아야만 했니? … 

그래도 제일 난이도가 높은 건 역시 조향이었다. 컨셉을 정하고 각 향에 대한 지식과 빈약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간신히 하나의 향을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한 달여의 숙성 기간을 지나면서 향은 드라마틱하게 바뀌곤 했다. 향 분자들이 서로 섞여 들며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물론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이렇게나 바뀔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개별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서로 소개해 주었을 때, 그들이 보이는 예상하기 힘든 화학반응과도 비슷했다.

꽤 오랫동안 프리랜서에 가깝게 일을 해오면서 실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다 보면 연결해 주고 싶은 사람들도 생겼고, 어떤 사람들을 소개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바람 부는 세상’을 떠돌면서 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사람이어서, 아는 사람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리라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실장님은 바람 부는 광야에서 살아온 사람이잖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만났던 자리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신나 하거나, 내가 약속이 생겨 떠난 뒤에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두운 표정으로 “언니는 왜 그런 사람이랑 친해?”라는 말을 건넨 후배도 있었다. (이전에 일로 만나 안 좋은 경험이 있는 경우이긴 하였다) 그런 때에 아, 사람 간의 화학반응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로군, 중얼거렸는데, 그걸 리얼 분자 간의 화학반응으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막걸리 공장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귀를 대어보기도 하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발향이 잘 되는 가벼운 분자들이라 조용한가? 싶다가, 그래도 인간이 듣지 못하는 데시벨로 치열하게 만나는 중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미묘한 변화들이 생겨나고,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그렇게 천국과 지옥… 까지는 아니지만 꽤 먼 마음의 거리를 오가며 다섯 계절을 보내고, 이제 다섯 가지의 향수를 가지고 “출시”라는 낯선 단어를 써본다. 처음이라 무진장 부끄럽고 익숙지 못한 모든 일이 상당히 불안하지만, 가보지 못한 세계의 깊이가 주는 기분 좋은 긴장과 흥분을 상쇄시킬 만큼은 아니다. 

‘출시’라는 말을 아직 나 혼자 써보고 있고, 주문 목록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지만… 가보자, 용감하게. 한 발 한 발 더디더라도 꾸준하게.

옐로우노트의 향수들과 만나 행복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당신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